『人間失格』論

- <요조>의 恐怖와 破滅의 요인 -


李三順(현대번역학원)


Ⅰ. 서론


  무뢰파작가1)인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는 1909년(明治42년) 아오모리현(青森県)기타츠가루군(北津軽郡)가나기마을(金木村)에서, 대지주의 7남 4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다자이의 아버지 겐우 에몬(源右 衛門)은 중의원 의원을 지낸 부호였다. 그는 어머니가 병약하여 거의 숙모와 유모의 품에서 자랐으며, 조숙하고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로 성장하였다. 그는 아오모리 중학시절부터 작문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구제(旧制)히로사키(弘前) 고교시절에는 생가를 모델로 한 소설『무겐나라쿠(無間奈落)』를 발표하였다.

  다자이(본명;津島 修治)는 1935년 『역행(逆行)』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가 되었으며, 1936년에는 『만년(晩年)』을 발표하였다. 그의 삶은 자살미수와 마약중독으로 파란 많은 삶이었으나 이시하라 미치코(石原美知子)와 재혼할 무렵부터『부악백경(富嶽百景, 1939)』『여생도(女生徒, 1939)』등 평이하고 안정된 작품으로 바뀌었다. 그는 전후 소멸해 가는 고귀한 존재에 대한 만가 『사양(斜陽, 1947)』으로 유행작가가 되었으나, 주인공 요조(葉蔵)가 마약에 중독되어 무사시노(武蔵野)병원에 강제 수용되어 파멸해 가는 인간실격 의식을 기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간실격(人間失格, 1948)』과 미완성 작품인 『굿바이(1948)』를 남기고 강물에 투신자살하였다.

 다자이의 투신자살 이후 일본 문학계의 다자이 열풍은 대단했으며 젊은이들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의 문학적 평가, 문학사적 위치 매김은 평자에 따라 유동적이다. 다자이 문학을 전면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문학자, 아주 싫다는 독자도 적지 않다. 다자이 생전에 그의 문학을 비판한 사람으로는 당시 「소설의 신」이라고 불리며 일본문단에 군림하던 시가 나오야(志賀 直哉)가 있으며, 사후에는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등이 비판하였다. 

또한 다자이의 문학은 일본문학으로서는 드물게 보편성과 국제성을 가지고 있어,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해외의 일본문학 연구가들이 다니자키 준이치로(谷畸 潤一郎),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 康成),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등의 문학을 읽으면 이국적 정서를 느끼게 되는데, 다자이의 문학을 읽으면 작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잊고, 마치 자신의 일이 쓰여져 있는 것 같은 절실한 문학적 감동을 느끼게 된다고 호평하고 있다.2) 따라서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행해져 왔으며, 본고에서 다룰  『인간실격』에 대한 평가 또한 극찬에서 혹평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주인공 <요조>가 그토록 철저하게 자기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이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인간실격』분석을 통하여 주인공 <요조>가 인간성을 상실하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다시 한번 세밀하게 살펴본 후 주인공을 파멸로 이끈 원인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주인공 <요조>를 처음부터 「인간실격자」로 규정해 놓고, 인간의 현실생활의 영위에 가담할 수 없는 인간으로 처음부터 요조를 설정해 간다.3) 그리고 요조를 폐인이라고 하면서 그를 폐인으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그러한 세상을 규탄하면서, 세상으로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다.4) 그러나 보편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만 그토록 철저히 파멸에 이르게 될 수는 없는 것이며, 요조 자신의 내부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본고는 요조를 파멸에 이르게 한 환경적 요인과 함께 성격적 결함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결론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제1장  <요조>의 공포


   1) 불안과 공포의 의미


요조의 공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불안과 공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불안은 마음이 편안하지 아니한 것, 또는 파국에 대한 막연한 예감과 이에 수반되는 일정한 생리적인 반응의 총칭이다. 이에 비하여, 공포는 무서움과 두려움 또는 미래에 있어서 재앙이나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정서를 의미한다.5) 따라서 불안은 막연하지만 공포는 보다 심화되고 구체적이다.

 또한 불안은 어머니와의 필수적인 일체감이 붕괴될 때 공생적인 유아가 경험하게 되는 무력감에서 출발하는데,6) 프로이드에 의하면 불안은 자아의 방어가 활동을 시작하는 신호이다. 그리고 공포가 주로 외적인 위험에 대한 것이라면, 불안은 그 사람 내부에 있는 미지의 위험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포, 놀람, 기쁨과 같은 핵심적이고 분화된 정서는 출생 시부터 사망 시까지 존재하며 가족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변화된다. 또 이 시기의 아동은 어머니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2세 경의 아동은 동물이나 어두움, 갑작스러운 불빛, 괴상한 소리 등이 공포의 대상이며, 3세 이후가 되면서 공포의 대상은 범위가 확장되어 간다. 5세 경이 되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물이나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상상내용에 대해서도 공포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5세 이후에는 유아가 성장함에 따라 공포정서가 점차 감소되며 6세 경부터 개인차는 있으나 거의 사라지게 된다.7) 

따라서 불안과 공포는 유아기에 형성되고 6세 이후 점차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유아기의 정서안정에 어머니의 사랑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 생기는 막연한 두려움은 어머니의 애정을 확인하면서 점차 희미해진다. 또한 부모나 다른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을 때의 만족감은 어린이에게 불안을 떨치고 공포를 이겨낼 자신감을 갖게 해 줄 것이다.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다른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했다면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장을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다. 


  2) <요조>의 공포의 형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안과 공포는 유아기에 형성되며, 유아기의 정서안정에는 부모의 사랑이 중요하다. 그러면 요조의 공포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먼저 요조와 부모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주변환경도 살펴보자.

요조의 어머니는 병약했기 때문에 요조를 돌볼 여력이 없었으며, 요조 또한 병약하여 앓아눕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년기에 요조는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다른 가족의 보살핌에 만족해야 했다. 다른 가족들이 요조를 정성껏 돌본다 해도 모성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년기뿐만 아니라 수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어머니를 따라 상경하던 중, 객차 통로에 있는 타구에 오줌을 누었다는 실패담이 나올 뿐이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찾을 수 없다. 불안은 어머니와의 필수적인 일체감이 붕괴될 때 공생적인 유아가 경험하게 되는 무력감에서 출발한다8)는 학설에 따르지 않는다 해도 유아기에 어머니의 사랑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요조의 불안과 공포는 유년기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인간사이에서 경험하는 최초의 불안은 「격리불안」이며, 어린아이가 강력하고 폭력적인 증오를 경험하는데 모성상과의 격리보다 더한 것은 없는 것이다.9) 그리고 불안은 초기에 나타나 독립된 세계를 형성하며, 불안의 초기형태는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성격을 갖는다. 즉 「초기불안」은 어머니를 상실하거나 그 돌봄에서 벗어날 때 생기며, 이러한 모든 것은 유아가 감각과 반사에 지배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10) 발생하는 것이다.  또 유아기에 형성된 보편적인 불안과 공포는 6세 이후 자연스럽게 소멸되는데, 모성결핍으로 형성된 요조의 불안과 공포는 계속되는 애정결핍으로 더욱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봉건적 가족제도 하에서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는 요조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현의원으로 늘 바빴기 때문에 접촉할 기회가 적기도 했지만, 그에게 인자한 존재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상경하기 전날, 아이들을 모아놓고 어떤 선물을 사줄까 물었을 때, 요조가 대답을 못하자 아버지의 반응은 매정하다. 자신을 어려워하는 요조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는 자상함도 배려도 없이 수첩을 덮어 버린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요조는 틀림없이 아버지가 복수를 해올 거라 생각하고 공포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불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그는, 밤중에 몰래 일어나 아버지의 수첩에 아버지가 사주고 싶어하던 「사자탈」이라 쓰고 겨우 잠이 든다.

이것은 그에게 양자택일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권유를 거부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용기가 그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신뢰심 보다는 불신감과 수치심, 열등감에 사로잡혀 갔으며, 아버지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후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접하자 요조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심정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자 나는 그만 얼빠진 것처럼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계시지 않는다. 내 가슴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던 그립고도 두려운 존재가 이제 계시지 않는다. 내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고뇌의 항아리가 쓸데없이 무거웠던 것도, 아버지 탓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완전히 맥이 풀렸습니다. 고뇌할 능력조차 잃었습니다」11)


라고 쓰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의 가슴속에서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다. 가부장적인 제도 하에서 적당히 권위적이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엄격한 아버지에 대해서는 존경심과 신뢰심을 가질 수 있어 아이의 인격형성에 플러스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만일 아이가 아버지의 엄격함 뒤에 담겨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아이의 인격형성의 파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조는 아버지의 엄격함 뒤에 숨은 어버이의 사랑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렸고, 그것을 깨우쳐 줄 어머니의 사랑도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요조의 주변환경도 요조의 불안과 공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형성된 요조의 불안과 공포는 자라면서 점점 심해질 뿐이었다. 그가 가족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대인공포가 형성되어 가던 무렵, 요조는 하인과 하녀들로부터 추행을 당하고, 이때부터 그에게 인간불신 감정이 싹트게 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불안을 만드는 것은, 처음에는 부모의 태도를 통해 느껴지는 사회의 압력이고, 나중에는 비합리적인 사회의 압력에 부딪치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그 사람 내부의 어려움 들인데, 이 불안에는 항상 절망감이 있다고 한다.12) 따라서 부모의 권위적이고 엄격한 태도는, 아동이 자발성 결여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적극성 결여를 가져오기 쉽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거부, 부모의 냉정함, 자극 결핍, 일탈적인 가족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정신내적 갈등은 자폐증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13) 

이렇게 볼 때 모성결핍으로 인해 형성된 요조의 불안과 공포는 6세 이후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며, 부모한테 거부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는, 가족들이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통하여 그 심리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어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으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소극성과 열등감을 갖게 된 요조는 하인과 하녀들로 인해 인간불신감마저 갖게 되자 그의 불안과 공포는 더욱 심화된다. 이와 같이 유아기에 형성된 불안과 공포에 소극성, 열등감, 인간불신감이 더해지자 요조의 불안과 공포는 더욱 심화되고 구체화되면서 요조가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로 형성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요조의 마음속에는 치유할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기고, 그는 외부세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3)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외부세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 속에 고립되어 사고하는 요조가 현실세계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생활과 괴리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정거장의 브릿지를 ...... 선로를 건너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 상당히 세련된 유희이고, 그것은 철도의 서비스 중에서도 가장 센스있는 서비스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 나는 어린 시절 그림책에서 지하철도라는 것을 보고, 이것 역시 실리적인 필요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고, 지상의 차를 타기보다는 지하의 차를 타는 편이 색다르고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14)

뿐만 아니라 이불, 이불깃, 베개카바 등이 실용품이라는 사실을 20살이 되어서야 깨닫고 인간의 알뜰함에 암연하고 슬픈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그의 고백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철들 무렵까지 일반 실용품의 실리성, 실용성을 깨닫지 못했다. 사람들이 사물의 효용가치를 알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때, 그는 그것을 단순한 장식물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자기 혼자만이 남들과 다른 듯한 불안, 뒤늦게 이방인처럼 살아온 자신의 생활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을 때의 열등감은 대인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대인공포를 가중시켰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인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공복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위협적이고 미신처럼 들렸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말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식사시간에 대한 그의 고백을 보면 그가 보편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어두컴컴한 방의 말석에 추위에 덜덜 떠는 생각으로 입에 밥을 조금씩 날라다 밀어 넣고, 인간은 어째서 하루에 3번씩 밥을 먹는 것일까, 참으로 모두 엄숙한 얼굴로 먹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으로, 가족이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하여 어두컴컴한 한방에 모여, ......온 집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15)


그의 삶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유년기에 형성된 불안과 공포 때문이다. 그 불안과 공포가 인간불신과 복합되어 자폐성을 형성하고, 자폐의 세계에 굴곡되어 비친 자신의 결여감각 때문에 공포는 더욱 심화되었고, 요조를 전율하게 했던 것이다. 

원래, 자폐성과 소외감각의 소유자는 그 성격을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시켜갈 수도 있다. 싫은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목표를 정하여 몰두해 간다면 자기고양, 자아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16) 그러나 요조는 그런 삶을 거부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신용의 껍질을 굳게 닫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인해 형성된 불안과 공포는 하인과 하녀들로 인해 인간불신감이 겹치게 되자 더 심화되고 구체화된 공포로 발전된다. 그의 대인 공포증이 심화되고 가족조차 믿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으며, 자신의 세계의 문을 굳게 닫고 진실을 말하지 않게 된다. 그런 그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인간생활에 대한 무지함과 현실생활에 부적합함을 깨달았을 때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것이다.


제3장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

  

  1) 피에로로의 변신

    (1) 피에로로의 변신계기

자신만의 세계속에 사는 요조는 자신만이 남들과 다른 듯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드디어 그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모두가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의 공포는 점점 견딜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다.


「나의 행복의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이 전혀 다른 듯한 불안,  나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전전긍긍하며 발광할 뻔한 일 조차 있습니다」17)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입니다. ...... 소가 초원에 얌전히 누워 있다가, 갑자기 꼬리로 철썩 하고 배에 있는 등에를 쳐죽이는 것처럼, 별안간에 인간의 두려운 정체를, 분노에 의해 폭로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제나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전율을 느끼고, ......」18)


요조의 공포가 이렇게 심화되고 견딜 수 없게 되자 그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는 어떻게든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언동에 털끝만큼도 자신이 없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자신의 고뇌를 감추었다. 인간의 눈에, 가족이나 하인, 하녀에게까지 거슬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리고 순진한 낙천성을 가장하여 피에로가 되기로 했다. 그 길만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을 인간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익살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나의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나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인간을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익살이라는 한 줄로 겨우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끊임없이 미소를 지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번 성공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일발의 진땀나는 써비스였습니다」19)

사코 준이치로(佐古 純一郎)는, 그것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수단이며, 믿을 수 없고 두렵기만 한 인간에 대한 사랑할 의지를 버리지 않으려는 요조의 「익살의 윤리」였다20)고 한다.

그리고 그가 「위기 일발의 진땀나는 서비스」를 행한 것은 그에게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소극성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공포에 정면으로 부딪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포에 정면으로 맞서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피에로의 가면 속에 자신을 숨기기로 했던 것이다. 그가 거짓으로 가장된 익살행위에 의해 공포를 벗어나고자 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실패가 전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하며 언젠가는 탄로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인간 상호간의 개성을 인정하고 자기존재의 가치도 인정할 수 있었더라면 비겁하게 피에로의 가면에 자신을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2) 고독한 피에로 

요조의 익살연기가 능숙해지면서 그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사라지게 된다. 그 무렵에 찍은 가족사진에는 언제나 기묘하게 찡그리며 웃고 있는 피에로의 얼굴이 있었다. 그것 또한 어린 요조의 슬픈 익살연기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면서도 서로가 속은 것을 깨닫지 못하는지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비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는 인간이 두려워 피에로가 되어서 미소를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말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말대답은커녕 그 잔소리가 「만세일계의 진리」처럼 여겨져 미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으며, 그의 익살 연기는 점점 능숙해졌다. 

요조는 중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근처에 있는 친척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되자 가족들 앞에서 익살연기를 할 때와는 달리 익살연기가 수월해졌다. 자신의 진실을 애써 숨길 필요가 없이, 진실은 마음 속 깊이 숨겨둔 채 거짓 익살만 떨어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으며, 진실을 털어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웃는 얼굴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공포가 요동치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정체를 은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요조의 익살행위 속에 숨은 괴로움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에겐 아무도 없었다. 그의 마음속의 공포를 알고 그 고뇌를 위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이 고독한 피에로가 자신의 연기력으로 정체를 완전히 은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안심하려던 찰나에, 뜻밖에도 백치에 가까운 친구 다케이치에게 익살연기가 탄로나 실패하게 된다. 그가 체조시간에 철봉에 매달리는 척하며, 넓이뛰기처럼 앞으로 뛰어 모래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그의 연기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지만, 다케이치는 그의 연기를 간파했던 것이다.


「...... 나는 세계가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것 같은 심정이 되어, 와악! 하고 외치며 발광할 것 같은 기미를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21)


그가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발광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지게 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연기가 능숙하여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안심하려던 찰나에 다케이치에게 탄로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계속되는 불안과 공포는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겉으로는 어릿광대가 되어 남을 웃겼지만 자신도 모르게 괴로운 한숨이 나왔다. 다케이치가 소문을 퍼뜨릴 것 같아 이마에서는 진땀이 베어 나오고, 미치광이처럼 묘한 눈빛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게 되었다.

그의 마음속 공포를 알 리가 없는 다케이치는 요조에게, 

「틀림없이 여자가 너에게 반할 거야」22) 라는 예언을 한다. 가족 중에도 친척 중에도 여자가 많아서 여자들 속에서 성장한 셈이지만, 그는 여자들과 사귀는 것은 언제나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로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몇 배나 더 난해했다. 그런데 여자들이 요조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반한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다케이치가 가지고 온 요괴그림을 보며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후일, 자신의 추락해갈 길이 그 순간에 결정된 것처럼 여겨져 견딜 수 없습니다」23) 


그는 그것이 고호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요괴를 자기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본대로 생생하게 표현한다. 요조도 그런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요괴의 그림, 지옥의 말의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그가 지금까지 요괴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세상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새삼스럽게 신선한 느낌을 받고 요괴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진 것은, 이제 대인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24) 

그는 공포를 잊기 위해 피에로가 되었지만 다케이치에게 들통이 나서 실패하게 되자 「위기일발의 진땀나는 서비스」보다는 진실한 행위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화상 제작에 착수했다. 겉으로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가슴속 깊이 숨기고 있던 음산한 속마음을 그리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얼굴을 미소로 가장하고 「타인을 위한 써비스」를 해왔는데,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자신이 그리고 싶은, 자신의 참모습을 그린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음침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린 자신의 참모습인 이 그림을 그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다케이치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다케이치는 이 그림을 보고,

「너는 위대한 화가가 될 거야」25) 라는 두 번째 예언을 한다. 

 자화상을 통해 잠시나마 진실을 표현했던 그는 끝내 자신의 참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한 채 다시 피에로의 가면을 쓴 것이다. 그는 왜 자신의 자화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그에게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포에 정면으로 맞서 이겨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도쿄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2) 또 다른 시도, 모성을 찾아서

  (1) 모성을 찾아서 

요조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에서, 도시의 못난이 정도로 생각되는 호리키를 알게된다. 그는 자신과 모습은 달랐지만 인간의 삶의 영위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방황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자신과 동류의 인간으로 느껴졌다. 다만, 그는 익살행위를 의식하지 않고 행했으며 어릿광대의 비참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만이 자신과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호리키와 같이 있을 때는 대인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는 호리키와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호리키로부터 술과 담배, 매춘부, 전당포, 좌익사상을 배우게 된다. 술과 담배는 인간공포를 한때나마 달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좌익사상은 「비합법」이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은 버젓하지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요조에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또 열등의식과 공포 속에서 피에로의 슬픈 미소 속에 자신을 숨기고 성장한 그로서는, 거짓웃음을 파는 매춘부가 자신과 동류의 인간으로 느껴져 마음이 편안했으며, 매춘부의 품에서는 유아기에 굶주려 온 모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에게는 매춘부라는 것이,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나 광인처럼 보이고, ......동류의 친화감 같은 것을 느끼는지, 나에게 언제나 그 매춘부들은 거북하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호의를 보였습니다. 아무 타산도 없는 호의, 강매가 아닌 호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 나로서는 그 백치나 광인 같은 매춘부들에게서 마리아의 원광을 실제로 본 밤도 있었던 것입니다」26)


그는 매춘부와 같이 있으면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매춘부는 자신과 동류일 뿐 인간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매춘부도 그에게는 동류의 친화감, 동류의 호의를 보여 주었다. 요조는 자신과 동류인 매춘부의 품에서 「사랑」이 아닌 「모성」을 느끼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모성을 갈망하고 있던 그는 하룻밤이나마 모성을 통해 공포를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하룻밤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매일 밤 매춘부를 찾았다. 그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매춘부와 노는 일 에도 흥미를 잃게 되어 그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매춘부의 품에서 모성을 느끼고 공포를 잊을 수 있었던 반면, 그에겐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게 되고, 그 공포를 잊는 대가로 생긴 「덤의 부록」이 더욱 선명해져 호리키에게 지적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를 같이하여 「비합법」이 좋아 좌익운동에도 가담하게 되는데, 그는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인 듯한 느낌이 들어 동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상냥해 졌다. 

범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의 피해를 모른 체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할 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며, 비합법을 좋아한다. 요조가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책임의식이 희박하며 「합법」과는 인연이 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싸르트르는, 인간은 그 자신을 확정한 이후에만 어떤 존재로 될 것이며 미래의 그의 모습은 그 자신에 의해 형성된다고 하였다.27)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 되느냐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책임이다. 인간은 그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선택하거나 타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을 허용한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라도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묵인도 나약한 선택 혹은 선택할 자유로부터의 도피이기 때문이다. 요조는 처음부터 버젓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신을 형성해 갔으며,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지하운동의 분위기는 안심이 되고 편안했을 것이다. 운동의 본래의 목적보다는 「비합법」이라는 운동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무렵, 그에게 여자가 반할 거라던 다케이치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었다.  


「찻집 아가씨한테서 유치한 편지를 받은 기억도 있고, 사쿠라기 마을에서 20살 정도 된 이웃집 장군의 딸이......, 쇠고기를 먹으러 가면 내가 묵묵히 있어도 그 집의 하녀가......, 단골 담배 가게의 딸로부터 건네 받은 담배갑 속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가씨가 손수 만든 듯한 인형을......」28)


그러나 그가 극히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지만,

「여자에게 꿈꾸게 하는 분위기가 자신의 어딘가에 감돌고 있는 것」29)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무렵 그에게 반한 여자 중에 카페 여급인 쓰네코가 있었다. 그는 쓰네코의 모습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무언의 엄청난 외로움을 몸 외곽에 한치 정도의 폭으로 기류처럼 띄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면 이 쪽 몸도 그 기류에 휩싸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간은 험악한 음울한 기류와 적당히 융합하여 『물 속 바위에  달라붙은 고엽처럼』 내 몸은 공포로부터도 불안으로부터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30)


그는 백치 같은 매춘부들의 품속에서 안심하고 푹 잠들었던 느낌과는 다르게, 사기꾼의 아내인 쓰네코와 보낸 밤에 행복을,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그 행복감도 하룻밤 뿐으로 그는 다시 경박한 피에로로 돌아와 있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31)는 그럴싸한 구실을 대며 피에로의 가면을 다시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연 행복이 상처받을까봐 익살의 연막을 둘러치고 피에로로 돌아온 것일까? 오히려 요조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매춘부와의 관계는 돈을 주고 산 거래이다. 매춘부와의 거래는 도덕성의 문제일 뿐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을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쓰네코는 다르다. 그녀가 비록 사기꾼의 아내이기는 하나, 남편이 범죄자일 뿐 그녀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가 「쓰네코와 보낸 하룻밤에 행복감을 맛보았다」는 것은, 그녀가 자신과 동류인 버젓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져 그녀에게서 모성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인데, 상대가 버젓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쓰네코에게는 비록 사기꾼이지만 남편이 있다. 그는 잠깐동안의 행복이 상처받을까봐 서둘러 피에로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나약한 자신의 천성적인 기질로 인해, 일시적인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저지른 과오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몸을 피한 것이다.

 (2) 몰핀 중독과 자살기도 

삶에 지친 쓰네코는 요조에게 「죽자」는 말을 했고, 공포, 돈, 좌익운동, 여자문제 등으로 번민하고 있던 그는 쉽게 그 제안에 동의한다. 그는 쓰네코와 함께 가마쿠라 바다에 뛰어들어 투신자살을 감행한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폐의 세계에 살고 있던 그가, 익살행위를 통해서도 모성을 통해서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자, 호리키로 인해 재회하게 된 사기꾼의 아내의 「죽자」는 제의에 쉽게 동조한 것이다. 그러나 여자만 죽고 그는 살아 남았다.

그는 이 사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히라메의 보호감독 하에 살게 된다. 그러던 그가 가출하여 찾아간 호리키의 집에서 시즈코를 만나게 되는데, 시즈코는 남편과 사별하고 다섯 살 된 딸이 있는 미망인이었다. 시즈코는


「...... 당신을 보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뭔가 해주고 싶어서 안달할 거야 ...... 언제나 흠칫거리며, 그리고 익살꾼인걸 ...... 가끔 혼자서 몹시 침울해 있지만, 그 모습이 더욱 여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해」32)


라고 말한다. 다케이치의 예언이 다시 한번 확인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시즈코의 집에서 남자첩 같은 생활을 한다. 시즈코의 딸, 시게코가 기도를 하면 하느님이 뭐든지 들어 주냐고 물으며, 「진짜 아빠」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는 깜짝 놀란다. 자신은 시게코의 적이었으며 시즈코 모녀의 행복에 방해물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시게코가 「별안간에 등에를 쳐죽이는 소꼬리」를 갖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시게코에게도 오들오들 떨게 된다. 그는 그 길로 새로운 도피처인 마담의 집으로 가서 함께 기거하게 된다. 

여기에도 그의 나약함이 드러난다. 그가 시즈코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며, 선택할 자유와 책임은 병행한다. 그러나 그는 선택할 자유는 누릴 수 있어도 자신이 누린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못되었던 것이다. 그가 시즈코의 남자첩 같은 생활을 시작한 것은 단순히 히라메의 보호감독 하에 사는 자신의 비굴한 생활로부터의 일시적인 도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시게코가 「진짜 아빠」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죽은 아빠」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기 보다는 「죽은 아빠」의 「성실한 대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시게코의 죽은 아빠의 「성실한 대역」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임의식도 부족하고 소극적인 그로서는 그럴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들의 행복에 자신은「방해물」일 뿐이라는 사실만 크로즈업시켜 다른 도피처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마담의 집에서 기거하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엷어질 무렵, 순진 무구한 처녀 요시코를 만나게 된다. 요시코는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신뢰의 천재였다. 그에게 있어서 요시코는 「신뢰」 그 자체였다. 「동경」의 대상이자 「성처녀」였다. 그런 요시코와 함께라면, 「인간다운 사람이 될 수 있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낙관적인 생각을 미미하게 품기 시작하던 참에......」33) 요시코가 집에 드나들던 상인에게 겁탈을 당하게 된다.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인가』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살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나처럼 징그럽고 흠칫거리며 남의 안색만 살피고, 남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간 녀석으로서는, 요시  코의 무구한 신뢰심은 그야말로 푸른 폭포처럼 상쾌하게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밤새에 누런 오수로 변해버렸습니다」34)

 그는 무구한 신뢰심 때문에 겁탈 당한 요시코가 처음에는 가엾었으나, 차츰 그 신뢰심 때문에 또 다른 사건은 없었는지 의심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이같은 의혹이 요조의 마음에 생기는 것은 요시코의 천성적인 「무구한 신뢰심」이라는 것이 판단과 선택에 근거한 의지적인 행위가 아니고,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성향에서 온 「신뢰심」이었기 때문이다. 요조는 요시코의  순진 무구한 신뢰가 더럽혀지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외설만화를 그렸으며, 춘화를 그려 밀매하게 된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은 화를 낼 자격도, 용서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요시코가 사다 놓은 다량의 수면제를 발견하고, 죽어야 할 사람은 요시코가 아니고 자신이라는 생각에 그걸 소주와 함께 마시고 만다.

그가 요시코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구한 요시코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이었다. 그런데 요시코가 겁탈 당하는 것을 보며 역시 세상은 서로 속이고 험담하면서 태연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 사는 곳이며, 무구한 신뢰심의 소유자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착하고 마음이 여리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그는 겁탈 당한 요시코를 버릴 만큼 과감하지도 모질지도 못했고 용기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깨끗이 용서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로 선택한 죽음」을 이루지 못한 그는 3일 후 깨어나게 되고, 괴로운 마음을 달랠 길 없는 그는 차츰 알콜에 의지하게 된다. 알콜에 중독이 된 그가 각혈까지 하게 되자 약국을 찾는다. 약국 여주인은 알콜을 끊기 위한 수단으로 몰핀을 권한다. 

천성적으로 순수하고 마음이 여린 그는 약국 여주인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몰핀을 사용하게 되고, 그 양을 점점 늘려갔으며, 외상 약값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는 이제 몰핀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조는 공포를 벗어나 인간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익살연기를 하나 친구에게 탄로 나서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모성에 의지하여 공포를 잊으려 하나 또다시 실패하게 된다. 이렇게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모두 실패하게 되자 그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자살도 이루지 못한 그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알콜에 의지하게 되고 알콜을 끊기 위해 시작한 몰핀에 중독이 되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제4장  <요조>의 파멸과 그 요인


 1) <요조>의 파멸

어떻게든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던 요조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그 빚을 감당해주면 자신은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향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여자문제를 제외한 자신의 현 실정을 고백하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결과는 더욱 악화되어 학수고대하던 답장은 오지 않고, 그는 초조와 불안 때문에 약의 양을 더욱 늘려야 했다.

그가 몰핀 열대를 한꺼번에 주사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결심한 날 오후에 히라메와 호리키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상냥한 미소에 속아 결핵요양소인줄 알고 따라간다. 의사는 부끄러워하는 듯한 미소를 띄며 입원하여 요양할 것을 권했고, 호리키들이 돌아간 뒤 병원문은 굳게 잠겼다. 정신병원이었다. 그의 불행은 「거부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다. 그는 권유를 거부하면 서로의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서먹함이 생길 것 같은 공포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에게 무저항이 죄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에 직면하며, 실존한다는 것은 이 같은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애와 생활 그리고 실패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갖고 있으며, 자유와 책임은 병행한다.35) 

따라서 무저항도 나약한 선택 혹은 선택할 자유로부터의 도피이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것도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행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해보지 못한 그로서는 당연한 의문인지도 모른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피에로의 미소」를 연기했던 그가, 호리키의 그 「상냥한 미소」와 의사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미소」에 속아 정신병원에 수용된 것이다. 그는 이제 죄인일 뿐만 아니라 광인이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나는 역시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히는 것이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36) 


매춘부가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나 광인처럼 보여서 하룻밤이나마 공포를 벗어날 수 있었던 그가, 이제 그 자신이 미치광이, 폐인이 된 것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그에게 선택할 자유의 소멸과 함께 책임도 소멸된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형이 찾아와 아버지의 부음을 전했다. 그리고 고향 가까운 마을에 낡은 모옥을 사주고 하녀 한사람을 딸려 주었다. 하녀는 빨간 머리의 60에 가까운 추녀였다. 그는 이 빨간 머리 하녀에게 이상한 짓을 당한다. 이것은 요시코라는 「성처녀로 승화된 여성」이 더럽혀져 「추한 빨간 머리 하녀」화 된 것이며, 그가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여겼던 모성이 더럽혀지면서 모성적인 존재가 다 죽게되고, 그의 세상이 황량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37) 

또한 이것은 요시코를 통하여 구원받으려던 그의 마지막 소망 마저 소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한 가닥 희망도, 선택할 자유도 책임도 없는 그는 담담한 심정으로 수기를 이렇게 맺고 있다.


「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다만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38) 


그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진리처럼 생각되는 것은 그것 하나 뿐이었다. 그는 올해 「27세가 되지만 백발이 늘어 40세 이상」으로 보인다. 27년 동안 겪어야 했던 온갖 고뇌, 즉 공포, 여자, 돈 등은 그에겐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그는 이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인간성을 상실한 그에게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여력도 없지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없다. 그것은 그에게 선택할 자유의 소멸과 함께 책임도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가슴에는 감정이 없고, 얼굴엔 표정이 없다. 그대로 자연스럽게 죽어있는 듯이, 그저 세월의 흐름 속에 텅 빈 상자처럼 덩그마니 놓여 있을 뿐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조는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실패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자살을 이루지 못한 그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알콜 중독자가 되고 그가 알콜을 끊기 위해 시작한 몰핀에 중독이 되자 가족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하게 된다. 결국 그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폐인이 되어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된다.


  2) 파멸의 요인


요조는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풍요를 누리며 안락한 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는데도, 여자들의 집을 전전하며 남자첩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몰핀에 중독이 되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고 폐인이 되어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와 같이 요조가 태어난 환경과는 아주 다른 비참한 생활 속에서 철저히 파멸해 간 원인은 무엇일까? 요조를 파멸로 이끈 것은 환경적 요인과 성격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1) 환경적 요인

먼저 요조를 파멸로 이끈 환경적 요인으로 가족을 들 수 있다. 요조는 어린 시절 모성결핍으로 불안과 공포가 형성되고, 권위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의 냉담함으로 인해 소극성과 열등감을 갖게 된다. 게다가 하인과 하녀들로 인해 인감불신감마저 겹치게 되자 요조의 공포는 더욱 심화되고 구체화된 형태로 형성 발전된다. 이런 환경에 살던 요조는 학생의 신분이면서도 공부는 게을리 하고 술과 담배를 하고 매춘부를 찾아다녔으며, 나중에는 자살실패에 이어 몰핀에 중독이 되기에 이른다. 

 요조의 이 같은 행위는 객관적으로 볼 때 보편적인 인간의 이성행위라고 볼 수는 없으며 정신병환자로 생각될 소지는 충분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형성된 공포에 시달리는 그가 지나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킨 것은 가족들이 그를 광인으로 만든 것과 다름없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호리키나 히라메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주변사람을 들 수 있다. 지방에서 갓 상경한 그에게 매춘부와 전당포, 좌익사상 등을 가르쳐 준 호리키와, 가족의 부탁이라고는 하지만 호리키와 함께 결핵요양소라고 속이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히라메 같은 주변사람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나 한 인간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만 그토록 철저히 파멸해 갈 수는 없는 것이며, 요조 자신의 성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2) 성격적 요인

 요조는 순수하고 여렸기 때문에 주위의 유혹에 빠지기 쉽고 악에 물들기 쉬운 성격이었다.

 그는 요시코가 겁탈 당했을 때 더럽혀진 요시코를 버리고 이혼할 만큼 모질지도 못했으며 용기도 없었다. 그리고 요시코의 잘못이 아니니까 용서해 주고 싶었지만, 그의 감정으로 용서가 되지 않았다. 용서해 주고 싶은 이성과 용서할 수 없는 감성의 갈등 속에서, 여린 성품의 그가 택한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또 자신을 무조건 사랑하는 시즈코의 남자첩 같은 생활을 하면서, 시즈코의 어린 딸 시게코가, 신(神)에게 「진짜 아빠」가 필요하다고 기도하고 싶다고 했을 때, 자신은 그들 모녀의 행복에 「방해물」일 뿐이라며 그녀들을 떠난다. 그러나 시게코는 「죽은 아빠」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며, 「아빠처럼」살지만 전혀 「아빠답지」않은 요조에게, 시게코가 「진짜 아빠의 성실한 대역」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책임의식이 부족한 그의 현실회피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요조에게는 양자택일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아버지가 무슨 선물이 받고 싶은지 물었을 때, 그는 아버지가 사자탈을 사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책이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자신이 좋은 쪽을 선택하고 싫은 쪽을 거절할 수 있는, 자신의 주장을 밝힐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또한 시비를 판단하여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심약했던 그가, 알콜에 중독이 되고 각혈을 하여 약국을 찾았을 때, 약국 여주인이 권하는 몰핀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성격 탓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요조에게서 성격적 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성격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며, 누구에게나 다소의 성격적 결함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격형성에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특히, 요조처럼 의지가 약하고 여린 사람은 주위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노력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환경적 요인을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요조가 파멸하게 된 것은 환경적 요인과 요조 자신의 여러 가지 성격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빚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가 파멸해 가는 과정과 그 요인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요조가 파멸해 가는 과정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가 형성되고, 하인과 하녀들로 인해 인간불신감마저 겹치게 되자 요조의 공포는 극에 달하게 되고, 점점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게 된다. 자폐의 세계에서 사고하는 그는 인간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남들과 다른 듯한 불안에 휩싸여 밤마다 공포에 전율하게 된다. 극도의 불안 속에서 그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피에로로 변신하나 친구에게 탄로나 실패하게 된다. 그러자 그는 두 번째 시도로 모성에 의지해 본다. 먼저 매춘부의 품에서 모성을 찾던 그의 얼굴에 공포를 잊는 대가로 생긴 불길한 기운이 점차 선명해지자 매춘부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의 품에서 공포를 잊고 안주하려 한다. 그러나 책임감이 부족한 그는 한 여자에 안주하지 못하고 또 다른 여자의 품을 전전하게 된다. 그는 순진무구한 요시코로 인해 자신마저도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요시코가 상인에게 겁탈 당하는 것을 보고 자살을 기도하나 자살도 이루지 못하고 깨어나게 된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그는 알콜중독에 이어 몰핀에 중독이 되고 가족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결국 미치광이가 되고 폐인이 되어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와 같이 주인공의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인간실격』은 다자이의 마이너스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자전적, 자기변명적 소설이다. 그러나 『인간실격』의 내용과는 달리, 다자이의 아버지는 그가 14살 때 사망했고 큰형은 요절했으며, 그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여 고향에 요양하러 갔을 때는 유년시절 그를 돌봐 주었던 다케가 맞아주는 등 제3수기의 내용에 허구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자신도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었으며, 자살미수와 마약중독, 정신병원 수용등 대부분이 사실적 요소이기 때문에, 『인간실격』은 다자이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인간실격』에서 요조의 수기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올해 27세가 됩니다. 백발이 현저히 늘어서 대개의 사람들이 40세 이상으로 봅니다」39) 


이 27세는, 다자이가 1936년, 파비날 중독으로 무사시노(武蔵野)병원에 입원하여 1개월간의 병원생활의 괴로움을 토대로 하여 『Human Lost』를 쓴 나이와 동일하다. 27세에 다자이는 「인간실격(Human Lost)」을 체험한 것이다. 이것은, 다자이는 이미 27세에 인간성을 상실하고 「인간실격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자이가 39세에 야마자키 도미에(山崎 富栄)와 다마강(玉川)에서 투신자살할 때까지의 기간 즉, 27세 이후 다마강에서 자살하기까지의 기간은 「다만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일 뿐이었던 것이다.  

 

문학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자기 주장이고 자기의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다자이는 『인간 실격』을 통하여 세상에 어떤 자기를 주장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했을까? 오쿠노 다케오(奥野健男)는, 다자이는 결여감각을 갖고 있고, 버젓하지 못하며, 늘 불안과 공포와 고독감에 시달리는 나약한 자로서의 자기를 주장함으로써, 자신처럼 죄의식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안도시키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고, 그런 자기 를 주장하려 했다40)고 한다. 그런 점 때문인지, 미요시 유키오(三好 行雄)는 어쩐지 약자의 뻔뻔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약자라는 것에 의해 스스로 자기를 용서하고 있는 것 같은 점이 있다41)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마담의 말을 통하여,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빴다」「요조는 솔직하고 재치있고 하나님같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약자를 변호하는 말로 작품을 끝맺고 있다. 그 맺음말을 통하여 우리는, 요조는 명 연기자이며, 여자의 심리파악에 능하여 여자를 반하게 하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마담은 요조를 변호하고 있으며 요조가 파멸에 이르게 된 요인을 환경적 요인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과, 요조는 「인간실격자」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려워할 만한 「권위의 상징」으로 아버지를, 두려워할 만한 「세상악」의 상징으로서 호리키와 히라메를 등장시켰으며,42) 주인공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논리적인 결말을 내리지 않고, 「광인」이 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것으로 보아 세상에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하며, 요조가 파멸에 이르게 된 원인의 책임을 세상으로 돌리는 경향43)이다.

  그러나 요조가 처음부터 「인간실격자」였다면 마담이 요조를 「솔직하고 재치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요조가 경제적으로 혜택받은 집안의 출신이긴 해도, 요조의 성장과정과 처한 상황이 파멸해갈 우려가 다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조가 「인간실격자」가 아니고 「보편적인 인간」인 이상, 피치 못할 상황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정상참작」은 가능하지만, 완전히 「면죄」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요조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버젓하지 못한 인간인 것처럼 여겨져서 매춘부나 범죄자들에게서 동류의 정을 느낀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까지 외부의 요인으로 전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 자신이 누린 자유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요조를 파멸로 이끈 것은 물론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인해 형성된 공포,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가족, 그리고 바르지 못한 주변사람 등의 환경적 요인이 주 요인이 되겠지만, 동시에 요조의 여러 가지 성격적 결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파멸에 이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參 考 文 獻


     <単行本>

1) 奥野 健男『太宰治論』角川文庫, 1960

2) 奥野 健男編 『太宰治研究 2』筑摩書房, 1982  

3) 桂 英澄 『太宰治研究 1』筑摩書房, 1982

4) 佐古 純一郎 『太宰治の文学』 朝文社, 1992

5) 太宰 治『太宰治全集 1』筑摩書房, 1975

6) 太宰 治『太宰治全集 2』筑摩書房, 1975

7) 太宰 治『太宰治全集 3』筑摩書房, 1975

8) 太宰 治『太宰治全集 9』筑摩書房, 1975, (텍스트)

9) 太宰 治『人間失格』新潮文庫, 1998

10) 檀 一雄著 『小説 太宰治』六興出版社, 1945

11) 東郷 克美 『作品論 太宰治』双文社出版, 1979

12) 長部 日出雄 他 『太宰治』 小学館, 1995

13) 日本文学研究資料刊行会編 『太宰治』有精堂, 1970

14) 福田 清人『太宰治』清水書院, 1966

15) 文学批評の会編 『批評と研究 太宰治』 芳賀書店, 1972

16) 강 문희, 장 연집, 정 정옥共著 『아동정신건강』 정민사, 1998

17) 기시다 슈著, 우 주형訳『게으름뱅이 정신분석』도서출판 깊은샘, 1995

18) 김 정희, 김 현주, 정 인숙共著 『아동발달심리』 동문사, 1997

19) 김 채수 『소설의 주제도출법』박이정, 1997

20) 루이스 브레거著, 홍 강의, 이 영식訳 『인간 발달의 통합적 이해』 이와여자대학교출판부, 1998 

21) 이 형영, 이 귀행訳 『정신분석의 발달』 하나의학사, 1987

22) Gerald Corey著, 김 충기, 김 현옥訳 『상담과 심리치료의 원리와 실제』 성원사, 1980

23) G.F. 넬러著, 정 희숙訳 『교육철학이란 무엇인가』서광사, 1990    

24) 캘빈 S. 홀著, 최 혜란訳 『心理学入門』 学一出版社, 1992


     < 사전 >

1) 神谷 忠孝 『太宰治 全作品研究事典』勉誠社, 1994

2) 이 희승『국어대사전』민중서림, 1981 


     < 雑誌 >

1) 東郷 克美 外 『国文学 解釈と鑑賞』 至文堂, 1985

2) 鳥居 邦朗 外 『国文学 太宰治』学灯社, 1982, 5

3) 三好 行雄編 『太宰治必携』学灯社, 1980

4) 渡部 芳紀 外『国文学 解釈と鑑賞』至文堂, 1977


     < 論文 >

1) 饗庭 孝男 「『如是我聞』とキリスト教」1976, 12

2) 饗庭 孝男 「太宰治論」1972

3) 磯貝 英夫 「太宰治論」 1956, 6

4) 臼井 吉見 「『人間失格』の頃」 1949, 11

5) 奥野 健男 「太宰治論」1956

6) 奥野 健男 「太宰治の人と文学」 1998

7) 駒尺 喜美 「虚実皮膜の 精神」 1962, 10

8) 佐々木 啓一 「太宰治試論」 1961, 12

9) 谷沢 永一 「太宰治『人間失格』の 構成」 1959, 1

10) 塚越 和夫 「人間失格論」 1972

11) 鳥居 邦郎 「太宰治における文学精神の形成」 1959, 11

12) 沖浦 和光 「太宰治論ノート」 1949, 2

13) 平野 謙  「太宰治論」 1954, 7

14) 本多 秋五 「太宰治と共産主義」 1972

15) 三島 由紀夫 「太宰治について」 1972

16) 김 채수「근대소설의 주제 도출법 연구」한국일본어문학회, 1998, 9

17) 김 채수 「가이코 겐의『패닉』론」한국일본학회, 1997, 5

18) 김 채수 「소설문학장르의 표현양식과 주제 도출법」박이정, 1997 

19) 김 채수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의 ꡔ雪国ꡕ의 주제 도출법」박이정, 1997